기원전 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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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원전 1세기는 한반도, 로마, 중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한 시기이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57년에 신라가, 기원전 37년에는 고구려가, 기원전 18년에는 백제가 건국되었으며, 박혁거세와 주몽이 출생했다. 로마에서는 술라의 로마 진군, 카이사르의 루비콘 강 도하와 파르살루스 전투 승리, 카이사르 암살, 악티움 해전에서의 옥타비아누스 승리, 아우구스투스의 로마 제국 황제 즉위 등 로마 공화정의 위기와 제정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는 흉노의 한나라 투항, 서역도호부 창설, 왕망의 집권 등 전한 시대의 변화가 나타났다.
이 시기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사마천 등 중요한 인물들이 활동했으며, 안티키테라 기계, 마야 숫자 0의 기록 등 문화와 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발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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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1세기 - 숭가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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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세기 | |
---|---|
세기 정보 | |
기간 | 기원전 100년 ~ 기원전 1년 |
이전 세기 | 기원전 2세기 |
다음 세기 | 1세기 |
파르티아인 초상 조각 | |
![]() |
2. 주요 사건
기원전 1세기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사건들이 있었다.
연도 | 사건 | 지역 | 비고 |
---|---|---|---|
기원전 91년 | 동맹시 전쟁 발발 | 로마 공화정 | |
기원전 91년 | 무고의 난 발생 | 전한 | 유거 살해 |
기원전 82년 | 술라가 로마 최초의 내전에서 승리 | 로마 공화정 | |
기원전 69년 | 박혁거세 탄생 | 한반도 | 신라 시조 |
기원전 60년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시타니아 폭동 진압, 제1차 삼두정치 시작 | 로마 공화정 |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
기원전 60년 | 셀레우코스 제국 멸망, 흉노 일축왕이 전한에 투항, 한나라 서역도호부 창설 | 중동, 중앙아시아 | |
기원전 58년 | 주몽 출생 | 한반도 | 고구려 시조 |
기원전 57년 | 신라 건국 | 한반도 | 삼국사기 기록 |
기원전 49년 | 카이사르, 루비콘강 도하 | 로마 공화정 | |
기원전 48년 | 카이사르, 파르살루스 전투 압승 | 로마 공화정 | |
기원전 44년 | 카이사르, 브루투스에게 암살 | 로마 공화정 | |
기원전 43년 | 제2차 삼두정치 시작 | 로마 공화정 |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
기원전 37년 | 고구려 건국 | 만주 | 삼국사기 기록 |
기원전 31년 |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 대승 | 로마 공화정 | |
기원전 30년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멸망, 이집트 병합 | 로마 공화정 | |
기원전 27년 | 아우구스투스, 로마 제국 첫 황제 즉위 | 로마 제국 | |
기원전 18년 | 백제 건국 | 한반도 | 삼국사기 기록 |
기원전 4년 | 예수 출생 | 이스라엘 | 로마 제국 지배 하 |
로마와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 "로마", "로마 공화정의 위기와 몰락" 및 "로마 제국의 시작"을, 중국 전한과 관련된 내용은 하위 섹션 "중국 (전한)"을 참조하라.
2. 1. 한반도
- 기원전 69년 -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탄생하였다.[1]
- 기원전 58년 -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출생하였다.
- 기원전 57년 - 신라가 한반도 동남부에 건국되었다 (12세기 역사 문서인 ''삼국사기''에 따른 전통적인 건국 연도).[1]
- 기원전 37년 - 고구려가 남만주에 건국되었다(《삼국사기》에 따른 전통적인 건국 연도).[1]
- 기원전 18년 - 백제가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 건국되었다 (《삼국사기》에 따른 전통적인 건국 연도).[1]
2. 2. 로마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는 로마 공화정에서 로마 제국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여러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기원전 91년 동맹시 전쟁이 일어났고, 기원전 82년에는 술라가 로마 최초의 내전에서 승리했다. 기원전 60년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시타니아의 폭동을 진압하고,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결성했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내전이 발발했고, 기원전 48년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를 격파했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기원전 43년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제2차 삼두정치를 결성했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고, 기원전 30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멸망하면서 이집트를 병합했다.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국의 첫 황제가 되면서 로마 제정 시대가 시작되었다.2. 2. 1. 로마 공화정의 위기와 몰락

기원전 96년 키레네의 통치자 프톨레마이오스 아피온은 로마 공화국에 키레네를 유증했다.[1]
기원전 91년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의 암살은 이탈리아에서 사회 전쟁 (기원전 91–87년)을 야기했다.
기원전 89년 폰토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가 카파도키아 왕국을 침공하면서 로마 공화국과의 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88년 소아시아에서 아시아의 만찬으로 8만 명의 로마 시민이 사망했다.
기원전 88년 술라는 로마 역사상 최초로 로마로 진군한 로마 장군이 되었다.[1]
기원전 87년 로마 집정관 코르넬리우스 키나와 옥타비우스 사이에 옥타비아누스 내전이 발발했다.
기원전 86년 아테네 포위전이 끝나고 로마가 아테네를 정복했다.[1]
기원전 85년 술라는 그리스에서 미트리다테스 6세의 군대를 오르코메누스 전투에서 격파했다.
기원전 83년 술라는 미트리다테스 6세와 평화 협정을 맺고 로마로 진군했다.
기원전 83년-기원전 81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가 제2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을 벌였다.[1]
기원전 82년 세르토리우스는 술라를 피해 히스파니아를 거쳐 북아프리카로 도망갔다.
기원전 81년 술라는 로마의 독재관으로 임명되어 주요 개혁을 단행했다.[1]
기원전 80년 세르토리우스는 히스파니아를 침공하여 자신의 정권을 세우면서 세르토리우스 전쟁 (기원전 80-72)이 시작되었다.[1]
기원전 74년 폰토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 6세는 로마 공화국에게 왕국을 유증한 비티니아의 니코메데스 4세의 유언에 이의를 제기하며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73년 탈출한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노예 반란으로 제3차 노예 전쟁이 발발했다.[1]
기원전 73년–기원전 72년 루쿨루스는 테네도스 해전, 키지쿠스 포위전, 린다쿠스 전투에서 미트리다테스를 격파하고 아르메니아로 도망쳤다.
기원전 71년 폼페이우스는 세르토리우스 전쟁과 제3차 노예 전쟁을 종결했다.[1]
기원전 69년 루쿨루스는 아르메니아를 침공하여(티그라노케르타 전투) 셀레우코스 왕조를 시리아에 재건했다.
기원전 68년 폼페이우스는 루쿨루스를 대신하여 세 번째 미트리다테스 전쟁에서 로마군의 지도자가 되었다.
기원전 67년 폼페이우스는 특별 지휘권을 부여받아 지중해를 괴롭히는 해적들을 상대로 3년간 작전을 펼쳐 40일 만에 격파했다.
기원전 66년 폼페이우스는 미트리다테스 6세를 소아시아에서 몰아냈다 (리쿠스 전투).
기원전 63년 미트리다테스 6세는 자살하면서 세 번째 미트리다테스 전쟁이 종식되었다.
기원전 63년 키케로는 제2차 카틸리나 음모를 비난하고 진압했다.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대를 로마의 종속국으로 병합했으며, 셀레우코스 제국을 영구 폐지했다. 유대의 아리스토불루스 2세는 권력을 잃고 요한 히르카누스 2세가 로마의 봉신으로 복귀했다.
기원전 62년 나바테아 왕국은 로마의 봉신이 되었다.
기원전 61년 오르게토릭스와 헬베티족이 프랑스 남서부로 이주하려 하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군사적 행동을 취하여 갈리아 전쟁을 시작했다.
기원전 60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가 제1차 삼두정치를 결성했다.
기원전 58년 비브락테 전투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헬베티족을 정복했다.
기원전 58년 게르만족은 골을 침공하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보게스 전투(기원전 58년)에서 패배했다.[1]
기원전 58년 클로디우스는 로마 도시 정치의 중심 인물이 되었고, 키케로는 망명했다.[1]
기원전 5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벨가이족을 침공하여 사비스 전투에서 격파했다.[1]
기원전 57년 키케로는 밀로와 그의 폭도들의 책략으로 인해 망명에서 소환되었다.[1]
기원전 55년-기원전 54년 카이사르의 브리타니아 원정.[1]
기원전 54년-기원전 53년 암비오릭스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골에서의 반란이 있었다.
기원전 53년 파르티아는 크라수스 휘하의 로마군을 카르해 전투에서 격파하여 제1차 삼두정치를 종식시켰다.[1]
기원전 53년 클로디우스는 로마에서 폭력 사태로 사망했고, 그의 추종자들은 원로원 건물을 불태웠다.
기원전 52년 폼페이우스는 옵티마테스에 가담하여 로마의 단독 집정관이 되었다.
기원전 52년 베르킨게토릭스의 골에서의 반란 (게르고비아 전투, 알레시아 전투).[1]
기원전 51년 욱셀로두눔 공성전은 갈리아 전쟁의 종결과 골에 대한 최종적인 로마의 정복을 의미한다.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점령하며 카이사르의 내전이 시작되었다.[1]
기원전 48년 프톨레마이오스 13세는 공동 통치자 클레오파트라 7세를 폐위시키며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에서 프톨레마이오스 내전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4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를 결정적으로 격파했다.[1]
기원전 47년 나일 강 전투 (기원전 47년) 이후 클레오파트라 7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좌를 되찾았다.
기원전 4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탑수스 전투에서 아프리카 (로마 속주)를 장악했다.
기원전 4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문다 전투에서 승리하여 히스파니아를 다시 장악하고 카이사르의 내전을 종식시켰다.[1]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으로 임명되었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카르타고와 고대 코린토스를 로마 식민지로 재건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1]
기원전 43년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는 제2차 삼두정치를 결성하고 로마를 장악했다.
기원전 42년 제2차 삼두정치는 필리피 전투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을 격파했다.
기원전 41년-기원전 40년 루키우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페루시아 전쟁을 벌였다.
기원전 40년 파코루스 1세는 로마 시리아를 정복했다.[1]
기원전 38년 벤티디우스는 긴다루스산 전투에서 파르티아 제국을 격파하여 로마 시리아를 탈환했다.[1]
기원전 37년 헤로데 1세는 헤로데 왕국의 왕이 되었다.
기원전 37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파르티아를 침공했다.
기원전 36년 나울로쿠스 해전에서 제2차 삼두정치는 반란군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로부터 시칠리아를 장악했다.[1]
기원전 34년 클레오파트라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알렉산드리아 기증을 거행했다.
기원전 32년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간의 불화로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전쟁이 발발했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군대를 격파하고, 로마 제국의 사실상 지배자가 되었다.[1]
기원전 30년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이집트를 병합했다.[1]
기원전 27년 로마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부여했다. 아우구스투스는 결국 로마 원로원이 이전에 가졌던 모든 권한을 차지하여 첫 번째 황제가 되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로마 공화정의 종말과 원수정의 시작으로 여겨진다(기원전 27년-서기 235년).[1]
기원전 25년 갈라티아는 갈라티아의 아민타스가 사망한 후 로마에 병합된다.[1]
기원전 19년 칸타브리아 전쟁의 주요 전투 종료로 히스파니아의 로마 제국 정복이 완료된다.
기원전 16년–기원전 13년 아우구스투스는 라인강 리메스를 건설한다.
메종 카레와 퐁 뒤 가르가 건설되다.
기원전 9년 티베리우스 황제는 판노니아를 로마 제국에 병합했다.
2. 2. 2. 로마 제국의 시작
기원전 91년 동맹시 전쟁과 무고의 난이 일어났다. 기원전 82년 술라가 로마 최초의 내전에서 승리하였다. 기원전 60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시타니아의 폭동을 진압하고, 로마에서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의 제1차 삼두정치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는 루비콘강을 건넜고, 기원전 48년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크게 이겼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는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했다. 기원전 43년 로마에서 제2차 삼두정치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크게 이겼으며, 기원전 30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멸망하였다.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국의 첫 황제가 되었다.2. 3. 중국 (전한)
기원전 91년 한나라에서 무고의 난이 발생하여 황태자 유거가 살해되었다.[1] 기원전 87년 한 무제가 사망하고, 8세의 아들 한 소제가 즉위하였다. 진미제, 상관걸, 곽광이 섭정이 되었다.[1] 기원전 86년 섭정 진미제가 사망하면서 공동 섭정이었던 상관걸과 곽광 사이에 권력 다툼이 시작되었다.[1] 기원전 80년 상관걸 가문이 멸망하고, 곽광이 한나라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1]기원전 77년 부개자가 한나라를 대신하여 루란 왕국의 왕을 암살했다.[1] 기원전 74년 한 소제가 사망하고, 창읍왕 유하가 즉위했다가 폐위되고 한 선제가 즉위하였다. 곽광은 계속해서 한나라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남았다.[1] 기원전 71년 오손과 한나라가 흉노를 공격했다.[1]
기원전 68년 곽광이 사망하고 한 선제가 완전한 권력을 잡았다. 곽씨 가문은 이후 2년 동안 제거되었다.[1] 기원전 60년 흉노의 일축왕이 전한에 투항하고, 한나라의 서역도호부가 창설되었다.[1]
기원전 58년 호한야가 사촌인 오야엔제 흉노 선우에게 반란을 일으켜 흉노 내전이 시작되었다.[1] 기원전 53년 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한나라의 신하가 되었다.[1]
기원전 48년 전한 선제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전한 원제가 즉위하였다. 왕정군이 황후가 되었고, 그 결과 그녀의 일족은 결국 전한 왕조를 무너뜨리게 된다.[1] 기원전 46년 한나라는 비용 절감 조치로 하이난에 대한 통제를 포기했다.[1]
기원전 36년 지즈 전투에서 간옌서우와 천탕이 승인되지 않은 원정을 시작하여 흉노가 중앙 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막았다.[1] 기원전 33년 한 원제가 사망하고 아들 한 성제가 뒤를 이었다. 왕정군 황후는 태후가 되었고, 그녀의 오빠는 군대와 행정부를 지휘하게 되었다.[1]
기원전 8년 왕망이 한나라 군대와 행정부의 수장이 되었다.[1] 기원전 7년 한 성제가 사망하고 조카인 한 애제가 즉위했다. 왕정군 황태후가 태황태후가 되고, 황제의 할머니 부씨 (원) 후궁이 황태후가 되었다. 왕망은 군대와 행정부 수장직을 사임하고, 왕씨 가문과 부씨 가문의 불안정한 음모가 지배하는 통치 시대가 시작되었다.[1]
기원전 2년 한 애제가 인기가 없는 동성애 애인 동현을 군대와 행정부 수장으로 임명했다.[1] 기원전 1년 한 애제가 사망하고 8살의 사촌 한 평제가 즉위했다. 왕망이 섭정으로 임명되어 광범위한 개혁을 시작했다.[1]
2. 4. 기타 지역
- 기원전 91년: 한나라에서 태자 유거의 반란이 일어났다.
- 기원전 89년: 아누라다푸라의 발라감바가 스리랑카 전역을 장악하였다.
- 기원전 87년: 한 무제가 사망하고, 8세의 아들 한 소제가 즉위했으며, 진미제, 상관걸, 곽광이 섭정이 되었다.
- 기원전 86년: 한나라의 섭정 진미제가 사망하면서 공동 섭정인 상관걸과 곽광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 기원전 85년: 나바테아인의 아레타스 3세가 다마스쿠스를 정복하였다.
- 기원전 80년: 섭정 상관걸과 곽광 사이의 갈등으로 상관씨 가문이 멸망하고, 곽광이 한나라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
- 기원전 80년경: 사카스의 왕 마우에스가 간다라와 탁실라를 정복하였다.
- 기원전 77년: 부개자가 한나라를 대신하여 루란 왕국의 왕을 암살했다.
- 기원전 75년경: 칸바 왕조가 마가다에서 숭가 왕조를 대체한다.
- 기원전 74년: 한 소제가 사망하고, 부적합한 창읍왕인 유하가 즉위했다가 한나라 선제가 뒤를 이었다. 곽광은 계속해서 한나라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남았다.
- 기원전 71년: 오손과 한나라가 흉노를 공격한다.
- 기원전 68년: 곽광이 사망하고 한나라 선제가 완전한 권력을 잡았다. 곽씨 가문은 이후 2년 동안 제거되었다.
- 기원전 66년: 아리스토불루스 2세가 유대에서 요한 히르카누스 2세로부터 권력을 빼앗았다.
-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대를 로마의 종속국으로 병합했다. 셀레우코스 제국을 영구적으로 폐지했다. 유대의 아리스토불루스 2세는 권력을 잃고 요한 히르카누스 2세가 로마의 봉신으로 복귀했다.
- 기원전 62년: 나바테아 왕국이 로마의 봉신이 되었다.
- 기원전 60년경: 사카족이 마투라를 정복했다.
- 기원전 58년: 호한야가 사촌인 오야엔제 흉노 선우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흉노 내전이 시작되었다.
- 기원전 56년: 비크라마디티야가 사카족을 우자이니에서 격파하고 비크람 삼바트 달력 시대를 시작하였다.
- 기원전 53년: 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한나라의 신하가 되었다.
- 기원전 1세기 중반: 산치에 있는 대탑의 동쪽 토라나가 제작되었다. 초기 안드라 시대. 한 비문에 따르면 인근 도시 비디샤의 상아 조각가들이 조각했다.
- 기원전 48년: 전한 선제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전한 원제가 즉위하였다. 왕정군은 황후가 되었고, 그녀의 일족은 결국 전한 왕조를 무너뜨릴 것이다.
- 기원전 47년: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서 6명의 왕이 통치하던 해.
- 기원전 46년: 중국의 한나라는 비용 절감 조치로 하이난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였다.
- 기원전 33년: 한나라 원제가 사망하고 아들 한나라 성제가 뒤를 이었다. 왕정군 황후는 태후가 되었고, 그녀의 오빠는 군대와 행정부를 지휘하게 되었다.
- 기원전 30년경: 사타바하나 왕조가 마가다에서 칸바 왕조를 대체했다.
- 기원전 8년: 왕망이 중국 군대와 행정부의 수장이 되었다.
- 기원전 7년: 한 성제가 사망하고 조카인 한 애제가 즉위하였다. 왕정군 황태후가 태황태후가 되고, 황제의 할머니 부씨 (원) 후궁이 황태후가 되었다. 왕망은 군대와 행정부 수장직을 사임하였다. 왕씨 가문과 부씨 가문의 불안정한 음모가 지배하는 통치 시대가 시작되었다.
- 기원전 2년: 한 애제가 인기가 없는 동성애 애인 동현을 군대와 행정부 수장으로 임명하였다.
- 기원전 1년: 한 애제가 사망하고 8살의 사촌 한 평제가 즉위하였다. 왕망이 섭정으로 임명되어 광범위한 개혁을 시작하였다.
3. 주요 인물
- 기원전 100년 - 로마의 군인,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
- 기원전 70년 -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
- 기원전 69년 -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7세
- 기원전 63년 -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 기원전 60년
- * 소무 - 전한의 대신
- * 허려권거 선우 - 흉노의 선우
기원전 1세기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분야 | 인물 | 간략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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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군사 | 마리우스 | 공화정 시대 집정관(7번 역임), 킴브리·테우토니 전쟁,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 |
술라 | 공화정 시대 독재관, 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 마리우스의 라이벌 | |
크라수스 | 공화정 시대 제1차 삼두 정치 일원, 자산가 | |
폼페이우스 | 공화정 시대 제1차 삼두 정치 일원, 카이사르의 라이벌 | |
카이사르 | 공화정 시대 제1차 삼두 정치 일원, 종신 독재관, 『갈리아 전기』 저술 |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 공화정 시대 국가 재건 삼인 위원 일원 | |
옥타비아누스 | 공화정 시대 국가 재건 삼인 위원 일원, 카이사르의 양자, 원수정 시작 | |
문학/사학 | 키케로 | 공화정 시대 집정관, 『국가론』 등 라틴어 산문 대성 |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 | 공화정 시대 역사가, 『로마 고대사』, 수사학자, 『문장 구성법』 저술 | |
시켈리아의 디오도로스 | 공화정 시대 그리스인 역사가, 이집트와 로마를 역방, Bibliotheca historica영어 저술 | |
기타 | 미트리다테스 6세 | 소아시아 폰토스 왕국 국왕, 로마 공화정과 세 차례 전쟁 |
클레오파트라 7세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집트 최후 여왕,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와 친분 | |
헤로데 대왕 | 로마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이어지는 유대 왕, 헤로데 왕조 창설 |
이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인물들이 활동했다.
- '''동아시아'''
이름 | 생몰년 | 주요 활동 |
---|---|---|
무제 | 기원전 156년 - 기원전 87년 | 전한의 황제 (재위 기원전 141년 - 기원전 87년), 흉노 정벌 등 적극적인 외교 정책, 치세 후기 내정 재건 |
사마천 | 기원전 145년 - 기원전 87년 | 전한의 역사가, 『사기』 저자, 무제 앞에서 이릉 변호, 궁형 |
곽광 | ? - 기원전 68년 | 전한의 정치가, 대장군, 무제 사후 소제 보좌, 창읍왕 유하 폐위, 선제 옹립 |
선제 | 기원전 91년 - 기원전 49년 | 전한의 황제 (재위 기원전 73년 - 기원전 49년), 무제 증손, 여태자 손자, 전한 중흥의 조 |
유향 | 기원전 77년 - 기원전 6년 | 전한의 학자, 정치가, 선제부터 성제까지 섬김, 『설원』, 『열녀전』 저술 |
왕망 | 기원전 45년 - 23년 | 전한의 정치가, 외척으로 권력, 애제 사후 평제 옹립, 전한 찬탈, 신 왕조 건국 |
3. 1. 한반도
3. 2. 로마
기원전 1세기 로마는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전환되는 격동의 시기를 겪었다. 이 시기에는 주요 사건과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원전 100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태어났다. 그는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였다.
- 기원전 91년: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의 암살은 이탈리아에서 사회 전쟁 (기원전 91–87년)을 일으켰다.
- 기원전 89년: 폰토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가 카파도키아 왕국을 침공하면서 로마 공화국과의 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이 시작되었다.
- 기원전 88년: 술라는 로마 역사상 최초로 로마로 진군한 로마 장군이 되었다.[1] 소아시아에서는 아시아의 만찬으로 8만 명의 로마 시민이 사망했다.
- 기원전 87년: 로마 집정관 코르넬리우스 키나와 옥타비우스 사이에 옥타비아누스 내전이 발생했다.
- 기원전 86년: 아테네 포위전이 끝나고 로마가 아테네를 정복했다.[1]
- 기원전 85년: 술라가 그리스에서 미트리다테스 6세의 군대를 오르코메누스 전투에서 격파했다.
- 기원전 83년: 술라가 미트리다테스 6세와 평화 협정을 맺고 로마로 진군했다. 같은 해부터 기원전 81년까지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무레나가 제2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을 벌였다.[1]
- 기원전 81년: 술라가 로마 국가의 독재관으로 임명되어 주요 개혁을 단행했다.[1]
- 기원전 80년: 세르토리우스가 히스파니아를 침공하여 자신의 정권을 세우면서 세르토리우스 전쟁 (기원전 80-72)이 시작되었다.[1]
- 기원전 74년: 폰토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 6세는 로마 공화국에게 왕국을 유증한 비티니아의 니코메데스 4세의 유언에 이의를 제기하며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이 시작된다.
- 기원전 73년: 탈출한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노예 반란으로 제3차 노예 전쟁이 발발한다.[1] 같은 해부터 기원전 72년까지 루쿨루스가 테네도스 해전, 키지쿠스 포위전, 린다쿠스 전투에서 미트리다테스를 격파하고 그는 동쪽으로 도망쳐 아르메니아로 간다.
- 기원전 71년: 폼페이우스는 세르토리우스 전쟁 (히스파니아에 대한 로마의 지배권을 회복)과 제3차 노예 전쟁 (이탈리아 남부에 대한 로마의 지배권을 회복)을 종결했다.[1]
- 기원전 69년: 루쿨루스가 아르메니아를 침공하여(티그라노케르타 전투) 셀레우코스 왕조를 시리아에 재건했다.
- 기원전 68년: 폼페이우스가 루쿨루스를 대신하여 세 번째 미트리다테스 전쟁에서 로마군의 지도자가 되었다.
- 기원전 67년: 폼페이우스는 특별 지휘권을 부여받아 지중해를 괴롭히는 해적들을 상대로 3년 동안 작전을 펼쳤으며, 40일 만에 그들을 격파했다.
- 기원전 66년: 폼페이우스가 미트리다테스 6세를 소아시아에서 몰아냈다 (리쿠스 전투).
- 기원전 63년: 미트리다테스 6세가 자살하면서 세 번째 미트리다테스 전쟁이 종식되었다. 키케로는 제2차 카틸리나 음모를 비난하고 진압했다.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대를 로마의 종속국으로 병합했다. 그는 또한 셀레우코스 제국을 영구적으로 폐지했다.
- 기원전 62년: 나바테아 왕국이 로마의 봉신이 되었다.
- 기원전 61년: 오르게토릭스와 헬베티족이 프랑스 남서부로 이주하려 하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군사적 행동을 취하여 갈리아 전쟁을 시작했다.
- 기원전 60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가 제1차 삼두정치를 결성했다.
- 기원전 58년: 비브락테 전투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헬베티족을 정복했다. 게르만족이 골을 침공하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보게스 전투(기원전 58년)에서 패배했다.[1] 클로디우스가 로마 도시 정치의 중심 인물이 되었고, 키케로는 망명했다.[1]
- 기원전 5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벨가이족을 침공하여 사비스 전투에서 격파했다.[1] 키케로는 밀로와 그의 폭도들의 책략으로 인해 망명에서 소환되었다.[1]
- 기원전 55년-기원전 54년: 카이사르의 브리타니아 원정.[1]
- 기원전 54년-기원전 53년: 암비오릭스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골에서의 반란.
- 기원전 53년: 파르티아가 크라수스 휘하의 로마군을 카르해 전투에서 격파하여 제1차 삼두정치를 종식시켰다.[1] 클로디우스가 로마에서 폭력 사태로 사망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원로원 건물을 불태웠다.
- 기원전 52년: 폼페이우스가 옵티마테스에 가담하여 로마의 단독 집정관이 되었다. 베르킨게토릭스의 골에서의 반란 (게르고비아 전투, 알레시아 전투).[1]
- 기원전 51년: 욱셀로두눔 공성전은 갈리아 전쟁의 종결과 골에 대한 최종적인 로마의 정복을 의미한다.
- 기원전 4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점령하며 카이사르의 내전이 시작되었다.[1]
- 기원전 4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폼페이우스를 결정적으로 격파했다.[1]
- 기원전 4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탑수스 전투에서 아프리카 (로마 속주)를 장악했다.
- 기원전 4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문다 전투에서 승리하여 히스파니아를 다시 장악하고 카이사르의 내전을 종식시켰다.[1]
-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으로 임명되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카르타고와 고대 코린토스를 로마 식민지로 재건했다.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1]
- 기원전 43년: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가 제2차 삼두정치를 결성하고 로마를 장악했다.
- 기원전 42년: 제2차 삼두정치가 필리피 전투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을 격파했다.
- 기원전 41년-기원전 40년: 루키우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페루시아 전쟁을 벌였다.
- 기원전 40년: 파코루스 1세가 로마 시리아를 정복했다.[1]
- 기원전 38년: 벤티디우스가 긴다루스산 전투에서 파르티아 제국을 격파하여 로마 시리아를 탈환했다.[1]
- 기원전 37년: 헤로데 1세가 헤로데 왕국의 왕이 되었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파르티아를 침공했다.
- 기원전 36년: 나울로쿠스 해전: 제2차 삼두정치가 반란군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로부터 시칠리아를 장악했다.[1]
- 기원전 34년: 클레오파트라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알렉산드리아 기증을 거행했다.
- 기원전 32년: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간의 불화로 로마 공화정의 마지막 전쟁이 발발했다.
-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 옥타비아누스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군대를 격파하고, 로마 제국의 사실상 지배자가 되었다.[1]
- 기원전 30년: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이집트를 병합했다.[1]
- 기원전 27년: 로마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부여한다. 아우구스투스는 결국 로마 원로원이 이전에 가졌던 모든 권한을 차지하여 첫 번째 황제가 된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로마 공화정의 종말과 원수정의 시작으로 여겨진다(기원전 27년-서기 235년).[1]
- 기원전 25년: 갈라티아는 갈라티아의 아민타스가 사망한 후 로마에 병합된다.[1]
- 기원전 19년: 칸타브리아 전쟁의 주요 전투 종료로 히스파니아의 로마 제국 정복이 완료된다.
- 기원전 16년–기원전 13년: 아우구스투스가 라인강 리메스를 건설한다.
- 기원전 9년: 티베리우스 황제가 판노니아를 로마 제국에 병합.
3. 3. 중국 (전한)
- 기원전 99년 - 위만조선의 관료 삼이 있었다.
- 기원전 7년 - 전한에서 한전법이 포고되었다.
- 기원전 1년 - 전한에서 승상, 어사대부, 대사마장군이 대사도, 대사공, 대사마로 개칭되어 삼공이 되었다.
- * 전한의 애제가 사망하고 평제가 즉위하였다. 대사마 동현이 실각하고 왕망이 대사마가 되었다.
- 기원 전후
- * 왜인이 백여 국가로 나뉘어, 일부 국가가 전한의 낙랑군에 조공하였다.(《한서》 지리지).
이름 | 생몰년 | 주요 활동 |
---|---|---|
무제 | 기원전 156년 - 기원전 87년 | 전한의 황제 (재위 기원전 141년 - 기원전 87년), 흉노 정벌 등 적극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으며, 치세 후기에는 내정 재건에 힘썼다. |
상홍양 | 기원전 152년 - 기원전 80년 | 전한의 정치가이자 재정가로, 무제를 섬기며 균수법, 평준법, 전매제 실시 등 재정 개혁을 실시하였다. |
소무 | 기원전 140년경? - 기원전 60년 | 전한의 관료로, 사자로서 흉노에 갔다가 포박되었으나 귀순을 거부하고 20년 가까이 억류되었다. |
이광리 | ? - 기원전 88년 | 전한의 군인으로, 무제의 명으로 한혈마를 구하기 위해 대완을 공략하였으나, 흉노에 항복한 후 숙청되었다. |
사마천 | 기원전 145년 - 기원전 87년 | 전한의 역사가로, 『사기』의 저자이다. 무제 앞에서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에 처해졌다. |
이릉 | ? - 기원전 74년 | 전한의 군인으로, 이광리를 구원하기 위해 급히 출병했으나 흉노와 싸워 패배하였다. 항복 후에는 흉노의 우교왕이 되었다. |
강충 | ? - 기원전 91년 | 전한의 관료로, 무고의 화를 일으켜 유거를 실각시키려다가 태자에게 참살되었다. |
유굴모 | ? - 기원전 90년 | 전한의 승상이자 황족으로, 무제의 조카이다. 여태자의 반란을 진압하였으나, 제위 계승 문제로 이광리와의 밀약이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
김일제 | 기원전 134년 - 기원전 86년 | 전한의 정치가로, 원래 흉노의 휴저왕 태자였다. 무제의 신임을 얻어 곽광 등과 함께 소제를 보좌하였다. |
곽광 | ? - 기원전 68년 | 전한의 정치가이자 대장군으로, 무제 사후 소제를 보좌하였다. 그 후 창읍왕 유하를 폐위하고 선제를 옹립하였다. |
유단 | ? - 기원전 80년 | 전한의 황족(연왕)으로, 무제의 아들이자 소제의 이복 형이다. 상관걸 등과 함께 곽광 타도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
상관걸 | ? - 기원전 80년 | 전한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곽광 등과 함께 소제를 보좌하였으나 후에 반목하여 곽광 타도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
병길 | ? - 기원전 55년 | 전한의 승상으로, 원래 옥리였으나 무고의 옥 때 여태자의 손자(후의 선제)를 비호한 공으로 승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
선제 | 기원전 91년 - 기원전 49년 | 전한의 황제 (재위 기원전 73년 - 기원전 49년)로, 무제의 증손이자 여태자의 손자이다. 전한 중흥의 조라고도 불린다. |
정길 | ? - 기원전 48년 | 전한의 군인으로, 서역 남도와 서역 북도를 병합하여 통괄하는 서역도호의 초대 도호로서 안원후에 봉해졌다. |
호한야선우 | ? - 기원전 31년 | 흉노의 선우로, 흉노의 내분으로 인해 전한에 귀순하여 선제와 회견하였다. 원제 시대에도 입조하였다. |
대덕 | 생몰년 미상 | 전한의 유학자로, 선제의 치세에 「예」의 기록을 정리하여 「대대례」를 편찬하였다. 조카 대성(소대)에게 대대라고 불렸다. |
환관 | 생몰년 미상 | 전한의 관료로, 시원 6년의 「염철의」 기록을 선제 시대에 『염철론』으로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유향 | 기원전 77년 - 기원전 6년 | 전한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선제부터 성제까지 섬기며 『설원』, 『열녀전』을 저술하였다. |
왕소군 | 생몰년 미상 | 전한의 궁녀로, 원제 시대에 흉노의 호한야선우의 입조에 뽑혀 그의 처가 되었다. |
왕정군 | 기원전 71년 - 13년 | 전한 원제의 황후이자 성제의 생모이다. 외척 왕씨 일족을 신장시켰으며, 조카 왕망의 제위 찬탈에는 반대하였다. |
왕봉 | ? - 기원전 22년 | 전한의 정치가로, 왕정군의 형제이다. "오후"로 열후에 봉해졌으며, 그 중심 인물로 대사마 대장군이 되었다. |
조비연 | ? - 기원전 1년 | 전한 성제의 황후로, 가무와 음곡에 능하여 성제의 총애를 받았다. 야사 『비연외전』에서는 경국의 미녀로 묘사되었다. |
왕망 | 기원전 45년 - 23년 | 전한의 정치가로, 외척으로 권력을 잡고 애제 사후 평제를 옹립하였다. 전한을 찬탈하여 신 왕조를 세웠다. |
3. 4. 기타 지역
- 기원전 97년: 아리아라테스 8세가 폰토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에 의해 카파도키아에서 축출되어 곧 사망한다.
- 기원전 96년: 키레네의 통치자 프톨레마이오스 아피온은 로마 공화국에 키레네를 유증한다.[1]
- 기원전 96년: 하스몬 왕조의 왕 알렉산드로스 야나이우스가 가자 포위 공격에서 승리한다.
- 기원전 95년: 티그라네스 2세가 아르메니아의 왕이 된다.
- 기원전 93년: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가 로마의 지원을 받아 카파도키아의 왕이 된다.
- 기원전 89년: 아누라다푸라의 발라감바가 스리랑카 전역을 장악함.
- 기원전 85년: 나바테아인의 아레타스 3세가 다마스쿠스를 정복함.
- 기원전 83년경: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대왕이 셀레우코스 제국의 붕괴 이후 시리아를 장악함.
- 기원전 80년경: 사카스의 왕 마우에스가 간다라와 탁실라를 정복함.
- 기원전 75년경: 칸바 왕조가 마가다에서 숭가 왕조를 대체한다.
- 기원전 62년: 나바테아 왕국이 로마의 봉신이 되었다.
- 기원전 61년: 오르게토릭스와 헬베티족이 프랑스 남서부로 이주하려 하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군사적 행동을 취하여 갈리아 전쟁을 시작했다.
- 기원전 60년경: 사카족이 마투라를 정복했다.
- 기원전 57년: 신라가 한반도 동남부에 건국되다(''삼국사기''에 따른 전통적인 건국 연도).
- 기원전 56년: 비크라마디티야가 사카족을 우자이니에서 격파하고 비크람 삼바트 달력 시대를 시작하다.
- 기원전 1세기 중반: 산치에 있는 대탑의 동쪽 토라나가 제작되다. 초기 안드라 시대. 한 비문에 따르면 인근 도시 비디샤의 상아 조각가들이 조각했다.
- 기원전 47년: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서 6명의 왕이 통치하던 해.
- 기원전 46년: 중국의 한나라는 비용 절감 조치로 하이난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다.
- 기원전 30년경: 사타바하나 왕조가 마가다에서 칸바 왕조를 대체했다.
- 기원전 9년: 티베리우스 황제가 판노니아를 로마 제국에 병합.
- 기원전 4년: 헤로데 대왕 사망 후 유대가 시리아 로마 속주에 병합됨.
- 자르마노체가스: 인도 체육 철학자
- 유바 2세: 누미디아의 마지막 왕
- 날란킬리: 남인도의 초기 촐라 왕조의 왕
- 미트라다테스 2세(? - 기원전 88년): 파르티아 왕(재위 기원전 123 - 기원전 88년)·크테시폰으로 천도·최성기를 맞아 "제왕의 왕"을 칭함
- 안티오코스 13세(? - 기원전 64년): 셀레우코스 제 시리아 최후의 왕(재위 기원전 69년 - 기원전 64년)·폼페이우스에게 멸망
- 안티오코스 1세(? - 기원전 38년): 소아시아의 코마게네 왕국 국왕(재위 기원전 69년 - 기원전 38년)·넴루트 산 분묘를 조영
- 바수데바(생몰년 미상): 인도의 칸바 왕조 초대 왕(재위 기원전 68년경 - 기원전 59년경) · 숭가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개창하다.
4. 문화 및 과학 기술
기원전 1세기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들과 중요한 발명품들이 있었다. 주요 인물들과 발명품들을 아래에 정리하였다.
구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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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 |
그리스 | |
중국 | |
기타 |
참조
[1]
웹사이트
Roman Timeline 1st Century BC
https://www.unrv.com[...]
2018-03-12
[2]
서적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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